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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인생과 음악 이야기 - 알고 나면 더 빠져든다

by 날아지니 202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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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류이치 사카모토를 저처럼 잘 모르다 영화 <오퍼스>와 영화 <괴물>을 통해 이제 알게 된 분들을 위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보를 마련했습니다.

그의 자전 에세이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나는 앞으로 몇 번이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얻은 정보를 위주로 정리했음을 밝혀둡니다.

 

이름 논란

류이치 사카모토는 서양식으로 이름, 성 순으로 표기한 것이라 사카모토 류이치 표기가 맞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거주하며 해외에서 더 많이 활동한 탓에 서양식 이름 표기가 익숙해진 듯합니다. 심지어 그의 유튜브 공식 계정도 Ryuichi Sakamoto라 되어 있으니까요. 그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그 이름으로 소개한다면 류이치 사카모토라 불러도 상관없지 않을까 합니다.

 

거장/월드클래스로 불리워지는 명성

  • <전장의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영국 아카데미 영화음악상
  • <마지막 황제> 아카데미 음악상/그래미어워드/골든글로브상
  •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제곡 담당
  •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 수여
  • 23개의 정규앨범
  • 수많은 영화 사운드트랙
  • 해외 여러 곳에서 수많은 콘서트를 비롯 전시 및 설치 미술로도 확장

어떻게 유명해졌나

류이치 사카모토님을 결정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곡은 <전장의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와 <마지막 황제> OST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예술성을 인정받고 대중적으로도 사랑받으며 그 이후 영화음악을 주로 작곡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본인도 자신의 인생 방향을 결정지어준 은인 두 사람으로 위 두 영화 감독인 오시마 나기사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꼽았으니까요.

재미있는 것은 모두 배우로 섭외가 되었는데 음악까지 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듯 상당히 미남이고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본인도 폼나고 멋있어 보이는 것을 꽤 추구했음을 고백합니다. ^^

<전장의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는 주연 배우였는데 본인이 감독에게 음악도 맡겨달라고 부탁하여 성사됐고, 이 작품이 칸 영화제에 출품된 덕에 베르톨루치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좌: 출처-Pitchfork,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출연한 모습. 우: 출처-Pinterest,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 출연 모습 

 

정규 앨범에는 다른 악기 소리도 들어 있지만 이 라이브 영상에서는 영화 <Opus>와 같이 피아노 솔로로만 그 격정과 깊이f를 오롯이 표현하는 것을 감상하실 수 있어 특별히 찾아 올립니다.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되었나

초등학생이 되면서 피아노를 시작했는데 이 때 만난 '도쿠이마' 선생이 범상치 않습니다. 연습곡 외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악기 구별, 악보 읽는 법,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등의 기초를 모두 가르쳐준 선생입니다. 또한 선생이 몇 달간 집요하게 권해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작곡까지 배우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출판사 편집자라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는데도부모님은 피아노 레슨에 도쿄 예술대학 작곡가 교수의 작곡 수업까지 지원해주셨구요. 

'스승 또는 멘토(재능을 발굴해준 선생)', '헌신적인 지원과 사랑을 주는 누군가(부모)'라는 성공의 충분조건이 여기서도 확인되네요.

중학생이 되어 농구를 한다며 반년간 그만두기도 했으나 결국 자원하여 피아노와 작곡 레슨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쿄대학 예술학교 작곡과 입학 실기시험에서는 가장 먼저 작곡해 제출하고, 단번에 붙는 실력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음악 교육과 훈련을 받은 유형입니다.

 

한국과의 인연

류이치님과 한국과의 인연은 정말 많습니다.

10대 시절부터 백남준 선생을 예술가로서 동경하다 32세가 된 1984년 도쿄도 미술관 개인전에 찾아가 직접 만난 뒤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물놀이를 창시한 김덕수씨와 오랜 친구입니다.

영화 <남한산성> OST를 제작했습니다. 에이전트를 거치지 않고 개인 홈페이지 문의란을 통해 직접 의뢰한 정성이 좋았고, 한국인에게 치욕적인 비극이었던 역사를 기어코 소재로 삼아 그려내는 제작진의 의지에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 흥행을 거둔 것도 에세이에서 언급하네요. 아마 내심 흐뭇한 마음에서였겠죠?

BTS 슈가가 영화 <마지막 황제>를 계기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찾아와 만났고, 슈가의 솔로앨범 중 <Snooze>곡을 위한 피아노 연주 음원을 만들어 줍니다. 별세 후 음반이 나왔기에 유작이 되었지만 랩에 고상한 힘과 묘한 분위기를 얹어주는 조화가 정말 좋습니다. 류이치님의 딸은 중년에 BTS의 아미가 되었다고 하네요. 

 

Official 계정대신 가사도 볼 수 있는 것으로 했습니다.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분은 단연코 이우환 화가라고 하겠습니다.

 

이우환
일본에서 모노하(物派) 운동 창시
모노하 이론은 인간의 상상력 개입을 최소화하고 나무와 돌, 종이 등을 있는 그대로 전시하고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2011년 백남준에 이어 한국 화가로는 두 번째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 정도의 세계적 미술가다. 회화, 설치미술, 미술평론 분야에서 활약.

 

류이치님은 열여덟 무렵부터 이우환님의 작품을 보고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는데 선생님이라 호칭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내는 앨범의 방향을 정하는데도 이우환님의 화풍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물을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것을 추구하는 '모노파'의 컨셉을 나이가 들어 비로소 음악에 응용하게 되었다하네요.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async」앨범입니다. 이 때부터 오선지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시간 예술에서 벗어나 설치 작품으로도 창작 영역을 넓히게 됩니다.

이렇게 이우환 님의 화풍에 영향 받은 것을 계기로 앨범 자켓을 부탁드려 이우환 화백이 「12」라는 앨범 자켓을 직접 그려주셨습니다.

 

좌: 이우환님이 그려준 Ryuichi Sakamoto 「12」 앨벌 자켓. 우: 출처-이우환 인스타계정 ufanlee. 최근 업로드한 작품

 

사회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

에세이를 보면 그는 거창하게 이념을 추구하며 사회운동가가 되었다기 보다는 그때 그때 현실 속 사회문제를 외면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듯합니다.

  • 신주쿠 고교 재학시절- 교복·시험제도 등의 학생을 수치화하고 평가하는 모든 학교 제도를 반대하는 수업 거부 운동
  • 르완대 내전 뉴스를 보고 아프리카 내전·기아 문제를 주제로 <Discord> 앨범 작곡. 이때부터 환경 문제를 의식적으로 고민
  • 뉴욕 9·11 테러 사고 현장 촬영-"우연히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의무"
  • 앨범에 파시즘·패권지향 반대/전쟁에 대한 분노를 담음- 「Heartbeat」
  • 숲 조성 프로젝트 '모어 트리즈 More trees' 발족·지속 활동.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확대되고, 중국팬들이 사막에 나무심기와 빈곤 지역 음악 교실 개설 및 악기 기증
  • 어린이 음악 재생 기금 설립-동일본 대지진 피해 학교에 악기 기증. "인간에게는 물과 식량뿐 아니라 음악도 필요하니까"
  •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를 위한 뉴욕 자선 콘서트 참가, 일본 피해 지역에서 주민 초청 자선콘서트 개최
  • '스톱 롯카쇼 프로젝트'-롯캬쇼 지역 핵발전소의 방사능 오염 문제 지적
  • 탈원전 시위-"원전에 기대지 않는 전기를 선택하자"
  •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언론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여 「CHASM」앨범 제작
  •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지원을 위한 자선 앨범 작곡·연주

군국주의·제국주의·내쇼널리즘·패권주의에 대한 반감을 깊이 지니고 

'코끼리처럼 온화하게 공생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

시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음 속의 외침이 올라올 때 그에 따라 행동한 것 같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적 성장

 

곡을 듣자마자 완전히 드뷔시에 사로잡혔다.
지나치게 공감하는 바람에 거기에 내 자아가 녹아들었다고 할까.
오랫동안 나 자신을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거의 진심으로 믿었다.

 

왜 그렇게 드뷔시에 빠져들었는지 궁금했는데 드뷔시 음악을 그가 직접 설명해주는 영상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세련된 형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음악, 그러나 그 안에도 프랑스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범죄성이 깃들어 있다."라고 찬사와 한계까지 고백합니다.

 

유튜부에서 찾은 몇 개 영상 중 비록 사카모토 선생이 잘생기지 않게 나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가장 핵심 부분을 볼 수 있어 이것으로 올립니다.

 

YMO밴드 활동은 서로 음악적 실력을 인정하고 자극받는 동료와 필요할 때만 협업하고 공연하는 식이었는데 지향하는 바와 음악적 스타일이 달라 은근히 반항심과 라이벌 의식도 있었던 듯합니다. 음악실력이 성장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으며 평생 세차례나 재결성하면서 나중에는 더욱 존중하고 조화로운 관계가 됩니다.

 

좌:출처-electricityclub.co.uk, 우: 출처-the japan times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가 활동하던  YMO(Yellow Magic Orchestra) 밴드 모습. 젊었던 그들이 이렇게 나이들었다

 

존 케이지와 같은 현대 음악에도 영향받았고 민속음악을 귀하게 여깁니다.

결정적으로 전환을 가져온 것은 그린란드에서 자연에 압도된 경험입니다.

압도적인 양의 물과 얼음덩어리, 그것이 빚어내는 풍경과 추위에서 받은 인상은 너무나 강렬해 잊혀지지 않았고, 영혼을 빙하에 두고 온 듯 현실로 복귀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은 자연에 비해 너무나 소소하다는 것, 인위적인 것을 멀리하고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추구하며 커다란 산수화와 같은 앨범 「Out of Noise」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자연에 대적할 수 없다

 

모노파 이우환님의 작품을 왜 그렇게 좋아하고 흠모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음악을 통해 지향했던 것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작인 <전장에서의 크리스마스> 탄생 일화가 신비롭습니다.

멜로디를 떠올린 시간은 30초 정도로, 피아노 앞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다시 뜬 순간에는 이미 화음을 갖춘 멜로디가 악보의 오선지 위에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조제프 응우옌는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에서 "우리가 신적 영감이 작동할 때 어떤 경계선도 한계도 없이 창조된다"고 하는데 바로 그런 순간이었나 봅니다.

콘서트 연주에서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이고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는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에세이에서 그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부분을 발췌하여 그의 글 그대로 실어봅니다.


성공을 거두는 음악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음악은 아무래도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 중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작곡을 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만들고 싶어서 작곡을 하는지, 그 경계선을 나도 잘 모르겠다.

계획적으로 커리어를 의식해 다음 행동을 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 40년 동안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매번 직전에 했던 작업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해왔다. 하고 싶은 것을 물 흐르듯 해 나가고 직관을 따랐다. 

구조적인 구축이 가능한 사람(제한된 공간에 적합한 스타일을 정해 맞는 작곡가 풍을 연결시키고 틀을 짬-영화음악에 특화되었다는 평을 받는 이유)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미리 그려놓은 청사진을 실현시키는 접근 방식에 생리적인 거부 반응이 있다.

군중의 일원이 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가본 적 없는 나라라 할지라도 단 한 명이라도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단순한 이국이 아닙니다.

미래에는 점점 더 생명의 존재가 경시될 것이다. 생명은 점점 더 조작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을 보지 않고 죽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보다 높게, 보다 빨리, 이런 식의 경쟁에 열광하는 것은 지극히 우생사상에 가깝다. 그렇지 않은 사회를 지향하고 싶다. 

 

젊은 시절 잘난 멋에 건방지게 살며 실수도 했지만 (스스로 돈과 여자를 쫓아 살아왔다고 쓰기도 하는데 글쎄...)

음악적 도전과 성취를 이루고 인격적으로도 원숙해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영화  <OPUS>는 암 재발 후 시한부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마지막으로 담은 그의 연주 영화입니다. 그의 음악 인생을 아우르는 20곡을 직접 선곡하여 흑백의 화면으로 피아노 한 대와 연주하는 그의 모습만 나오죠.

'거장의 마지막 작별 인사' 콘서트라는 문구에 홀려 영화를 보게 되었고

덕분에 그의 음악을 알게 되고

두 권의 자서전적 에세이까지 읽으며

그가 선입견 속의 일본인( 무리 속에서 튀는 것을 배척하고 겉과 속이 다른 ) 같지 않고 

존경할만한 점이 무척 많은 사람, 한국과 깊은 인연을 지닌 분, 인류와 생명과 자연을 사랑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좌: 출처-Filmlinc.org  <Opus> 영화 장면. 우: 출처-Youtube. <Opus> Official Teaser

 

 

아쉽게도 이제 <OPUS>는 영화관에서 볼 수 없습니다. 빨리 VOD가 나왔으면... 

 

영화 <괴물>에 나온 'Aqua'도 너무 좋은데, Ryuichi Sakamoto 유튜브 공식계정에서는 피아노 버전과 오케스트라 버전 모두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뛰어난 재능으로 인류에 큰 선물을 하는 것이 참 귀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카모토 선생님. 평온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