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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트렌드 톡톡

영화 리뷰 <패스트 라이브즈>, 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흥행했나

by 날아지니 2024.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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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송 감독이 각본, 연출을 맡아 탄생시킨 <패스트 라이브즈>는 데뷔작임에도 굉장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아래를 다 읽어보시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가 어떤 감동과 느낌을 주는지, 출연진 정보, 해외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점에 관해 알 수 있습니다.

 

갈채받은 데뷔작

■81회 골들글로브 5개 부문 후보-영화 드라마 부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비영어권 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 

■96회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

■전 세계 64관왕 183개 노미네이트

■뉴욕타임즈 선정 올해의 영화

 

◐수상기록◑

2023
▶36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밀로스스테릭상)
▶49회 LA 비평가 협회상(신인상)
▶88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신인작품상)
▶16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감독상)
▶50회 겐트 영화제(특별언급)

2024
▶76회 미국 감독 조합상(감독상(신인감독부문))
▶39회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버추오소스상)
▶44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외국어영화상)
▶58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작품상)

 

공감포인트

한 줄 평의 찬사

"섬세하게 슬픈 로맨틱 드라마로 진정한 성공작이다. 셀린 송 감독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데뷔작을 만들었다" - Gardian

"언어뿐 아니라 주인공들 사이에 흐르는 깊은 감정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 Variety

"셀린 송 감독은 매혹적인 캐릭터를 통해 현대의 사랑에 대한 개념을 깊이 있게 이야기한다" - Deadline

"지난 20년간 최고의 데뷔작" - <세이브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천천히 폭발하는 걸작" - EMPIRE

"섬세하고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것" - IndieWire

"영리하고 자신감 넘치며 독창적인 영화"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

"우아하게 포착하는 사랑의 뉘앙스" - SCREENDAILY

"오스카 유력 경쟁작" - THE TIMES

 

 

이 영화는 놀랍게도 감독의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했고, 큰 테마는 사랑과 인연입니다.

23년 전이라는 시간과 주택이 즐비한 한국의 동네를 보여주며 담담하게 시작했지만 저는 시작부터 왠지 슬픔 비슷한 감정과 아련함이 느껴졌는데요. 

열두 살 헤어지기 전, 12년 전의 화상 채팅 시작과 멈춤, 23년이 흘러 비로소 만나게 된 재회가 시간 흐름을 따라 펼쳐집니다.

해성과 나영은 열두 살 어린이 당시에도 친근함, 무조건적인 좋음, 위함이 느껴지는...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시키는 순수하고 아련한 첫사랑입니다. 23년만에 재회하고서도 달라진 나영(노라)을 해성은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열 두살의 나영은 그곳에 두고 왔어. 

 

너는 떠나야만 했어. 큰 꿈을 지닌 너를 품어줄 곳이 필요했어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너이기 때문이야

 

 

이번 생도 전생이라면 다음 생에 만나......

 

결국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노라는 울음을 터트리는데 같이 눈물이 날 정도로 공감하는 이들이 해외 관객에 더 많았던 듯합니다. 저도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린 듯 바람이 밀려들면서도 가슴이 꽉 차오르는 모순된 느낌을 느꼈습니다.

노라의 울음, 슬픔은 평소 의식하지는 않지만 무의식처럼 가슴 속 깊이 사라지지 않는 첫 사랑,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시절과 대상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상실감에서 온 것이겠죠. 특히 노라가 이민자가 되어 그런 감정이 더 증폭되었을 겁니다.

 

여기서 또 주목해 볼 사랑은 남편 아서의 사랑입니다.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사악한 백인 남자 스토리가 생각났다면서 유머를 던지지만 가장 포용적이고 성숙한 사랑을 보입니다.

한국에 열두 살 나영을 두고 왔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사실은 이제 정말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상실감에 우는, 아내의 그 복합적인 슬픔과 모순적인 감정을 이해하고 안아줍니다.

한국어로 꿈꾸는 배우자의 잠꼬대를 알아듣고 싶은 마음-사랑하는 이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는 부분도 깊은 사랑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겠지요.

사랑을 한다면 모두 아서같은 성숙하고 포용적인 사랑, 열두 살 해성같은 조건없는 사랑을 했으면 하네요. ^^ 

 

인연에 대한 탐구

싱글이라 어쩌다 잤고, 생활비를 아끼려 동거했고, 그린 카드가 필요했고, 작가이고 좋아하는 영화가 비슷하고 취향을 이해하는 다른 누군가라도 이 침대에 같이 누워있지 않을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사랑하던 사람을 마땅히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부유하며 만나는 인연과 연을 맺고 헤어지기도 하는 인생,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같이 이제 잠재 의식처럼 깊숙이 존재하던 사랑을 다시 들쑤시지 않고 다시 고요히 침잠하게 하는 인생, 지금 이 순간의 인연에 충실해야 하는 인생.

해외 관객들은 그동안 딱히 규정하지 못하던 감정과 관계를 '인연'이라는 말로 정의하는 것을 특별하고 신선하게 여기는 동시에 꽤 공감한 듯합니다.

셀린 송 감독은 담담함에서 시작해 울음이 터지는 감정의 절정까지 아주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끕니다. 그래서 특히 각본이 훌륭한 평가를 받았나 봅니다. 남편 아서역의 존 마가로님은 "각본이 정말 우아했고 그러면서도 명확하고 간결했다. 그리고 엄청난 깊이를 갖고 있었다. 이런 각본은 요즘 영화계에서 쉽게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출연진

해성-유태오

나영/노라-그레타 리

노라 남편 아서-존 마가로

어린 해성-임승민

어린 나영-문승아

 

 

긴 무명생활을 버틴 유태오님은 이 영화가 인생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작품성을 인정받고 세계적으로 흥행한 이 영화 덕분에 오퍼와 러브콜이 많이 들어와 이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레타 리님도 뮤지컬 배우로 일찍 성공했지만 그 뒤에는 배역이 없어 긴 공백기를 견뎌야 했고 결국 자신이 출연하고 싶은 작품을 위해 작가를 겸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분 모두 기존 서구권 영화에서 동양인은 전형적인 틀이 있었는데 (전형적인 요소, 코믹, 유별나 보임, 양념같은 끼워맞추기 등...)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아닌 평범한 남녀인 것도 바라던 바였고, 게다가 주인공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남녀 모두 첫 주연이었던 셈인데 유태오님은 전에는 분석, 상상, 계획을 많이 해서 연기했지만 이번에는 그 자체가 되어 연기를 통해 영혼을 표현하는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레타 리님의 경우 셀린 송 감독이 한국계 이민자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 '속에 있던 것을 꺼내 놓도록 격려'하고 '에너지를 마음껏 펼쳐놓을 장을 마련해 주었다'고 하네요.

 

 

해외에서 호평받은 이유

패스트 라이브즈의 성과는 전세계 72관왕, 장기 상영이 말해줍니다.

미국에서 1650만 달러 가량의 수익을 올린데 반해 한국은 현재 10만 관객에 불과하니 100만 달러도 안 되겠네요.

영화가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데 해외 관객은 그 느린 호흡을 지루해하지 않고 따라 몰입하고 감정이 고조되는 듯 합니다. 마지막 헤어진 후 노라가 터트리는 울음은 클라이막스같은 거죠. 공감가는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후기, 풍경이 아름답다는 후기도 있습니다. 아카데미 각본상에 당당히 노미네이트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아름다운 문학 작품같다는 평도 있구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디아스포라(고국을 떠나 이민자로 살아가는 집단 또는 이주 그 자체) 소재인데요, 미국에서는 디아스포라를 다루는 것이 시대적 화두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이를 전생, 인연으로 풀어내는 것이 새롭고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영화 <괴물>보다 안에서 생각거리가 계속 올라왔고, 더 좋았습니다. 열두 살 시절 순수한 사랑의 인연이 황순원의 소나기와 자우림의 '스물두살 스물하나'를 연상시키기며 긴 여운이 남았고, 아서의 성숙한 사랑도 마음을 따듯하게 해 주었네요.

현재도 눈 한 번 깜짝이면 과거가 되기에 소중합니다. 패스트 라이브즈. 꿈을 안고 큰 세계 이국에서 그 곳의 룰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분투하다 해성을 만나고 헤어지며 잊고 있던 향수도 떠오른, 단순히 사랑에 대한 상실감이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 아니었을까요. 첫사랑+뉴욕+한국인의 조합이 빚는 뭉클한 감동을 추천합니다.

 

인연은,
단순한 만남으로도 기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합니다.

                                                                                         by 셀린 송

 

 

노라가 해성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오던 피아노 연주가 참 좋았는데 OST로 검색하니 들을 수 있네요.

 

엔딩롤 팝송에서 깔리던 현악기 소리도 참 좋았구요.

 

클릭하면 즐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