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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의 개연성 해결-스포주의

by 날아지니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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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무속, 묘, 죽은 자, 혼령 등으로 담았습니다. 

 

 

'나오지 말았어야 할 것, 겁나 험한 것'은 관 속에 묻힌 자,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관 속에 갇혀 있던 혼령이었습니다.

장손이 정신병을 대물림받으며 피해를 보아 욌는데도 죽은 할아버지는 외려 후손들을 같이 데리고 가겠다며  아들과 손자의 숨을 끊고 천진한 아기인 증손자에게까지 사악한 마수를 뻗습니다.

 

<파묘>는 단순한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한국의 과거 속 트라우마 정화--나아가 땅의 이야기로 펼치려 한 원대한 서사의도가 있었습니다. 

서사가 빛을 발하려면 아무리 귀신이야기라도 심지어 SF나 만화라도 개연성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선후가 그럴만하구나 끄덕이거나 공감할 수 있게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후손을 못잡아먹어 난리라니...

알고보니 대대로 찐부자라는 이 집안은 일제치하 일본 앞잡이로 부를 축적한 매국노 집안이었던 듯합니다.

할아버지는 황국 신민으로 일제에 충성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는 또라이.

매국노의 내면 깊숙이 있는 이기심, 정의롭지 않은 판단력을 생각해 보면 혼령의 악마같은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제 앞잡이였던 할아버지의 카르마는 2대를 거쳐 3대에 와서야 끝이 나고 3대 아기는 이제 자신의 삶을 살겠죠.

 

또 하나 서사의 개연성을 떨어트린 건

일본 다이묘의 관이 첩장으로 밑에 있었고

그것은 우리나라 백두대간 허리를 끊어놓으려 한 말뚝이었다는 것.

재력가 집안의 신임을 받던 일본 노승을 앞세워 일제가 계획적으로 속이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었죠.

 

다이묘

사유 지배권이 있는 토지를 갖고 가신을 이끌고 세력을 가진 무사로 자신의 행정구역 안에서 군사·경찰권·경제적 권리를 행사했던 일종의 영주
일본의 농민들은 소작의 50%나 바치며 착취당했다고 함 

 

일본의 무사가 잔혹하기로 이름이 나긴 했지만 수백년을 흘러 남의 땅에 와서까지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한마디로 거의 전능한 귀신·악령 역을 하는 것이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무당 화림(김고은)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정령이란 혼령이 사물에 합쳐져 성장한 것

 

 

집단적인 사념이 팬듈럼을 만들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처럼 

식민지 한국을 어떻게든 병약하고 형편없게 하여 영구 지배를 하겠다는 일본의 야욕이 집단적으로 뭉쳐 자라왔다면

일제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알게 모르게 해결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우리의 트라우마, 정신적 상처도 집단적으로 뭉쳐 응어리져 있다면...

이건 개연성있는 보이지않는 실재가 됩니다.

그리고 감독은 다이묘 정령을 백두대간 말뚝으로 상징화한 것이죠. 

우리도 흙이 되어 돌아가고 우리의 후손이 계속 살아갈 이 땅이 정화되길 바라며...

 

영화 말미에서 상덕(최민식)이 묘자리에 100원을 던지며 '수고했다'는 장면이 있는데

100원에 새겨진 충무공 얼굴과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으로 열연한 최민식 배우님이 조화롭게 합쳐진다는 평이 있었다고 합니다. 

상덕이 자신의 피와 공격으로 범(우리나라)의 허리를 물어뜯던 여우(일제로 상징된 다이묘 정령)를 물리쳤으니까요.

 

 

그런데 감독은 전혀 의도하지 못했다고 하니 재미있습니다.

우리의 집단 지성이 또다른 의미를 발견했네요. 

 

어쨌든 다이묘 귀신이 나오면서 재미없어진다, 떨떠름해진다는 평도 꽤 있는데

저 역시 공감하는 입장에서

나름대로 이렇게나마 개연성을 부여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역사 그리고 집단 무의식에서까지 일제치하의 흔적은 정말 깊게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의미에서 일제와 관련된 소재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나올 것 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