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안중근 열사는 그동안 여러 작품으로 그려졌습니다. 소소한 TV물은 물론, 뮤지컬 《영웅》, 영화 《영웅》, 이번의 영화《하얼빈》, 영화의 원작이었지 않았나 오해를 불러일으킨 김훈 소설 《하얼빈》등.
뮤지컬 영화 《영웅》이 더 높은 평점을 받았지만, 블록버스터급 영화 《하얼빈》은 개봉 5일만에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며 더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영화 《하얼빈》에서 생략한 안중근 열사의 모습 중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소개하고,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눠볼께요.
1. 안중근 의사의 실책?
영화에 나왔듯 안중근 의병 부대는 함경북도 경흥 부근과 신아산 부근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며 승전합니다. 그러나 만국공법에 의거, 부대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포로를 석방해줬죠. 결국 이 포로들로 인해 위치가 탄로나 의병부대를 궤멸시키는 통탄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영화에서도 안중근 의사가 가장 괴로워하며 자신의 목숨이 먼저 간 동료들의 목숨을 대신하는 것이라 표현하듯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런 어이없는 판단을 한 것이 의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원칙주의자라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그러나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관련 정보를 차례대로 접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동양평화론을 주장하는 그의 사상은 세계를 아우르는 한없이 크고 심오한 것이었기에 범인과 다른 차원의 뜻을 품고 행동을 한다는 것을요. 한반도를 넘어서고 조선과 일본 관계를 뛰어넘어 한없이 크고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동양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하거든요. 흡사 오늘날의 EU 제도를 기획한 듯한... 그런 원대한 사상에서 나온 결정이기에 결과적으로 실책이 되긴 했지만 납득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영화《하얼빈》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이해하는데 보다 중요한 부분- 뤼순감옥에서 펼치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 이유 15조, 동양평화론 등-을 다루지 않아요. 일제는 그의 저술을 모두 완성하고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해놓고서 갑작스럽게 사형을 집행해버려요. 그래서 자서전은 남겼지만,「동양평화론」은 초반만 쓰다만 미작이 되어 아쉽게도 그의 사상을 모두 담지 못했어요. 악랄한 일제는 안중근 의사의 무덤도 알리지 않아 유언인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는 것도 하지 못하고 있죠.
안중근 의사가 독립의군을 이끄는 장군인 동시에 가산을 털어 교육사업을 한 교육 운동가, 사상가였다는 것도 알아 위인의 진면목을 모두 알기 바래요.
2. 하얼빈 영화 리뷰
영화는 안중근 열사가 한 인간으로서 겪는 깊은 고뇌, 고독, 고난을 매서운 추위, 차가운 얼음강, 끝없는 사막을 통해 표현해요. 감독은 역사적인 내용보다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던 인간적인 공감을 원했던 것 같아요.
한국, 몽골, 라트비아 3개국의 압도적 스케일, CG와 세트가 없는 100% 현장감과 리얼리티, 광활한 자연이 주는 압도적 에너지, 그에 걸맞는 웅장한 음악, 남성들의 격투씬에 능한 감독의 롱테이크 연출, 촬영 명장 홍경표 감독의 실력 등으로 감동을 빚어요.
시사회에서 거의 모든 배우가 언급한 '한걸음 한걸음' 독립 해방을 향한 고난의 발걸음을 먹먹하게 느끼게 해줘요.
영화 《영웅》만큼 통곡하진 않았지만《하얼빈》은 또다른 예술미로 눈물샘을 자극하더라구요.
우리에게는 뜨거운 고마움의 영웅 서사물, 외국인에게는 스릴러물로 다가올 법했던 이 영화가 예술미로 한층 승화되었어요.
신파가 아닌, 담담하지만 힘있고 숭고한 느낌으로 풀어지길 바랬다.
우민호 감독은 서사의 절정인 하얼빈 거사 장면마저 클로즈업이 아닌 부감으로 촬영할 정도로 절제하여 클래식한 드라마를 추구했고 그의 바램은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광음시네마(신촌 롯데시네마 중 한 관)에서 봤는데요 쿵쿵 울리는 초저음우퍼와 압도적인 입체음향을 자랑하는 곳이에요. 이렇게 음향이 좋은 상영관을 찾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거에요.
3. 배우에 관한 리뷰
잘생긴 배우가 잘 알려진 위인을 표현하는 장단점을 동시에 느꼈어요.
현빈이 표현하는 안중근 장군은 너무도 멋지고 어울리고 훌륭했지만 현빈이 지워지지 않아 현빈과 안중근 의사가 공존하는 느낌이었어요. '영웅'의 정성화 배우나 울산MBC 미니드라마 '마지막 간수'의 강필석 배우가 그냥 안중근으로 보이는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죠. 마적 정우성 역시 '와~ 정우성이구나! 저렇게 비틀거리고 외꾸에다 털거적데기를 입고 있어도 카리스마 뿜뿜에 멋지다니..' 뭐 이런 생각이 먼저 드니... 물론 짧은 순간에도 임펙트있는 연기는 훌륭했지만 말이에요. 캐릭터로 변신하면서도 배우의 매력이 여전히 각인되는 것은 장단점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독은 안중근 역으로 처음부터 현빈을 생각했고 될 때까지 설득했을 것이고 현빈이 계속 거절했다면(세 번 거절 후 승낙) 이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하네요.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 안중근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실패한 패장이 하얼빈까지 가는 과정이 얼마나 고단하고 고뇌에 차 있었을까. ... 그런 눈빛이 현빈에게 있다고 봤다. 부드럽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강한 힘, 결기가 느껴지고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절대 꺾이지 않는 그런 지점이 현빈의 눈에 담겨있기 때문에 현빈이어야 했다.
이렇듯 각 캐릭터 하나 하나에 깊은 의미를 담아 창조했어요.
이동욱(이창섭), 박훈(모리 다쓰오), 조우진(김상현), 박정민(우덕순), 전여빈(공부인) 모두 훌륭했지만
이토 히로부미 역할을 맡은 릴리 프랭키 배우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영화 관람 후에야 그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정말 잘 어울렸고 자연스러웠어요.
그는 일본인치고 키도 크고(174cm),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었고 일본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걸출했던 최고통치자의 아우라를 풍겨요.
안중근 의사는 정말 제대로 센 놈/큰 놈을 죽였던 거에요.
4. 우리에게 남은 것
너무나 춥고 시리고 막막하고 아팠을 우리 동포여, 열사여...
우리에겐 마음의 빚이, 계속 이루어져야 할 정화가 있습니다.
흠과 과오자, 숙적을 싹 밀어 없애고 새로 시작하는 청산이 아니라 정화!
안중근 장군님은 변절자 김상현에게 기회를 주고, 일본 및 세계와 평화롭게 사는 것을 주장하시듯
우리 모두가 정화하여 좋아지는 것, 함께 나아가는 것을 바라실 것 같습니다.
계엄이라는, 역사를 뒤로 돌리는 도발
179명 참사라는 비극으로
세밑이 더욱 암울하고 어둡습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문구가 지금의 현실과 맞아 크게 증폭됩니다.
불을 들고 어둠을 향해 가자.
100년이 걸려도 될 때까지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조상의 얼이 흐르고 있습니다. 힘을 냅시다.
독립투사 조상님들, 민초 영혼들, 사고 희생자분들 모두 평온하소서~
안중근의사기념관도 가보면 참 좋을텐데 아쉽게도 내부 시설 정비로 내년 1월 31일까지 휴관이에요.
대신 제가 가보았던 관람기를 참고해 보시라고 링크 올려둡니다.
남산행이 더 의미 있어 지는 곳 - 안중근의사기념관
남산 산책 기분으로 가는 길 서울에도 참 가볼 만한 곳이 넘칩니다. 서울의 허파로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남산은 언제든 가볍고 기분 좋은 산책 코스가 될 수 있습니다. 남산도서관 근처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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